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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연어


  생선이라. 고등학생 들어갈 때만 했어도 지독히도 입에 대기 싫었던 생선은 신기하게도 해가 바뀌면서 어느새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 종류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어쩌면 이전에는 조림으로만 먹었던 생선을 회와 탕, 그리고 구이로 먹게 되면서 그리 된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돌이켜보면, 어렸을 적 회와 야채를 소스에 석석 비벼 내놓았던 회덮밥이나 배 위에서 즉석으로 살을 발라 초장에 푸욱 찍어먹었던 진성 활어회는 잘 먹었었다. 여기에 비추어 보면 나는 생선 그 자체를 싫어했던 것이 아니라 생선을 조림으로 해먹는 방법만을 혐오했을 것인지도 모른다.

  생선은 심지어 고기보다도 더 비싼 식재료라 입에 대기란 맛을 들이고서도 결코 쉽지 않은 물건이다. 예전 섬에서 살았을 적에야 집에서 십여분을 걸어가면 바로 바다요, 낚시대를 그 시퍼런 아가리에 들이넣기만 하면 광어요, 우럭이요, 운이 좋을 때는 감성돔까지 잡히니 물고기가 흔한 물건인 줄 알았으나 뭍으로 나와보니 그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해외에서 들여온 참치니, 섬에서도 귀하디 귀한 참돔이야 그러려니 하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게이트볼 치고 나서 집에서 만날 먹던 민어가 그렇게나 비싼 생선이었다는 것은 나에게 적잖이 충격을 주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섬에서 살았을 때 더 일찍 생선에 맛을 들일 것을.

  내가 좋아하는 생선은 여럿이 있으나 개중 가격이 비싸 정말 복터진 날을 빼고는 먹을 수 없는 돔과 같은 몇 생선을 제하고 보면 크게 광어, 전어, 그리고 연어가 있다. 광어는 뭍에 나와 살게 된 이후 본격적으로 먹게 된 생선인데, 집 앞에 딱 씹는 맛이 일품일 정도로만 숙성시켜 내놓는 집이 있기 때문이다. 이 집은 광어도 일품이지만 스끼다시로 나오는 덴뿌라가 일품이다. 주로 새우 덴뿌라를 내놓는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왜 덴뿌라를 체해 죽을 정도로 많이 먹었는지 이해될 정도다. 

  각설하고, 광어는 사실 씹는 맛을 위해 먹는 생선이라 초장에 찍어먹어도 괜찮으나 나는 와사비를 적당히 탄 간장에 찍어먹는 것을 선호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맛이 특별히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실 광어는 씹는 맛을 제하고는 그다지 맛있다는 느낌을 받기 어렵다. 진짜 맛있는 생선은 전어와 연어다. 둘 다 기름기가 농후한 생선인데, 특히 가을 전어는 그 굽는 냄새에 집나간 며느리가 돌아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허나 전어를 구워먹는 문화는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마 일본식 구이 문화에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바, 원래 전어는 젓갈로 담궈먹거나 회로 먹는 물건이었다. 전어회는 산지에서 살던 어부들이나 해먹을 수 있던 물건이라 나랏님도 먹지 못했던 물건이다. 나랏님도 마음대로 못 먹던 물건답게 신선한 전어는 바로 회쳐먹으면 그 맛이 기막히다. 다른 회는 된장을 묻혀 쌈을 싸먹으면 맛이 죽지만 전어는 그 맛이 죽지 않고 새로운 맛이 나서 쌈을 싸먹어도 맛있다.

  그러나 이 전어도 최고는 아니다. 전어는 잔가시가 많아 가시를 통째로 씹어먹지를 못하는 사람이라면 먹는데에 고역이 따로 없다. 게다가 선도가 조금만 떨어지면 참깨를 서너말 부은 것 같던 그 고소함은 어디로 가고 비리비리한 맛과 역한 향만이 남기 때문에 신선하지 않은 전어를 다루는 집에서 먹는다면 여간 낭패가 아니다. 구워서 먹어도 따뜻할 때 바로 먹지 않고 남기면 비릿한 향은 물론 살이 뻣뻣해져 안 먹으니만 못하다. 

  진정으로 내가 최고로 치는 생선은 바로 연어다. 살이 많기도 하지만 기름지고 생선 특유의 비린내가 없어 생선을 먹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이 연어만큼은 맛있게 잘 먹는다. 그래서인지 비린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 사람도 연어만큼은 환장을 하고 잘 먹는다. 잔가시 없이 바로 유통되는지라 가시를 잘 발라내지 못하는 사람도 좋아한다. 

  연어는 어떻게 먹어도 맛있다. 훈제를 해서 먹어도 맛있지만 생으로 먹는 연어가 더 맛있다. 그 살에 켜켜히 쌓인 지방 냄새는 처참한 충청도 음식에 무참히 난도당한 나의 식욕을 깨운다. 하지만 그 가운데 내가 최고로 치는 것은 토치불로 살짝 익혀 내놓은 것이다. 토치불에 살짝 녹은 기름맛이 일품이다. 그렇게 기름진 음식이면 조금만 많이 먹어도 느끼함을 느껴야 함에도 불구하고 고기와는 달리 아무리 먹어도 느끼하지 않다. 단순한 나의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신기하게도 그렇다. 이렇게 기름기를 살짝 녹인 연어는 양파절임과 함께 일본식 덮밥으로 먹어도 나쁘지 않다.

  이토록 완벽한 연어는 구워먹기에는 너무나 아깝다. 연어스테이크야 웰던으로 굽지 않으니 그렇다고 치겠다. 그렇지만 연어를 통째로 구워먹으면 맛이 삼치와 비슷해진다. 굳이 비싼 연어를 가지고 왜 그래야 하는가? 그래서 나는 연어구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내가 뭐니뭐니해도 가장 싫어하는 식품은 바로 연어 통조림이다. 안 그래도 구워먹기 아까운 생선을 통조림으로 만들기 위해서 높은 불에서 익히고 그걸로 통조림을 만든다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인 것이다. 게다가 그렇게 익혀 만든 연어는 맛이 참치 통조림만도 못하다. 이것이야말로 연어에 대한 모독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내 사랑 연어가 그렇게 고통받는 것을 보면 내 마음은 찢어지듯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