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시절에 우리를 가르치던 수학선생님은 은퇴하면 시골에 내려가 벽에 황토를 칠하고 지푸라기로 지붕을 얹은 초가집에서 소박하게 살 것이라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집 앞에는 텃밭을 일궈 그 곳에 당근이나 양파, 양배추같은 채소를 기르고 싶다는 말씀도 종종 하셨다. 나는 시골 생활에 퍽 불만을 갖고 있었기에 그 선생님의 말에 공감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 이야기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선생님은 내가 중학교를 졸업한 해에 다른 곳으로 전근을 가셨다. 나는 그 선생님과 친하지 않았기에 중학교를 졸업한 뒤 단 한번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 다만 그 선생님과 정기적으로 연락하는 친구가 하나 있었기 때문에 근황은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난 모종의 사정으로 그 친구와 연락을 끊었고, 선생님의 소식 역시 더이상 듣지 못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몇년 뒤, 선생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받았다. 광주 어느 병원의 장례식장에 선생님께서 안치되어 있으니 조문하러 오라는 것이었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택시를 타고 빈소로 향했다. 그 때 우리는 선생님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하며 큰 소리로 웃고 떠들었는데, 아마 기사님의 눈에는 조문하러 가는 사람으론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선생님의 빈소에 도착한 것은 8시가 좀 지났을 무렵이었다. 빈소에는 단 두 사람, 상주와 중학교 시절에 특수반을 가르치시던 선생님 한 분밖에 없었다. 상주 되시는 분은 선생님의 친척분이셨는데, 상주를 맡을 사람이 없어서 자신이 대신 상주를 맡았다고 한다. 게다가, 우리가 오기 전 빈소에 온 사람은 고작 네 명이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우리는 말을 잇지 못했다.


 특수반 선생님께서는 연거푸 술이나 마시면서 실없는 잡담만 하셨다. 개중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면 그 선생님께서 담당하셨던 친구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친구는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데, 선생님의 말씀에 의하자면 다운증후군 환자는 스물 둘을 넘기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만약 그 친구가 세상을 뜨면 그 친구의 할머니께 잘 해달라고 하셨다.


 혹시나 내가 그 선생님과 계속 연락이 닿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 선생님은 전화를 받을 때마다 초가집 이야기만 계속 하셨을까.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 선생님은 초가집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도 했었다. 다만 내가 듣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착찹해졌다.


 선생님께서 돌아가신지 몇 년이 지났지만 난 아직도 친척이나 친구들의 빈소에 조문하러 갈 때마다 중학교 시절 수학선생님을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의 빈소는 8시가 되면 어김없이 붐빈다. 하지만 수학선생님의 빈소는 8시 이후에도 상주와 중학교 시절 특수반 선생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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