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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아, 나를 꺼내 줘

Written by 김진나, Published by 사계절문학사


 막 고등학교에 입학한 소녀의 감성이 물씬한 소설입니다. 좋은 의미이기도 하지만, 안 좋은 의미이기도 하지요. 그 나이대 소녀들의 감성을 잘 표현하긴 했습니다만, 거기까지입니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문제는 작가가 짝사랑을 하는 소녀에게 너무 이입했다는 점입니다. 물론, 작가가 주인공에 감정을 이입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특히나 이 소설은 1인칭 소설이니 주인공에 감정을 이입하면 할수록 이야기의 호소력이 높아지지요. 문제는, 작가가 사춘기 소녀 특유의 고2병 감성에 너무 물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그 뭐라고 하던가, BL, 로맨스, 귀여니류 소설에서 보이는 그런 감성이요. 그리고 전 그런 감성을 제일 싫어합니다. 그 감성은 그냥 호불호가 갈리는 감성이 아니에요. 그건 그냥 구린 겁니다.

  그래도 그 구리구리한 감성을 나름 세련되게 표현하려고 애를 쓴 것 같아요. 하지만 똥을 황금으로 덮는다고 냄새가 안 나는 건 아니죠. 이름만 좀 정상적이었으면 어느 정도 가려졌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름을 보세요. 주인공 '시지', 짝사랑 상대 '얼'... 완전 인터넷 로맨스 소설에서나 볼 법한 이름입니다. 그래요 그 막 걸음마를 떼는 글쟁이들이 고뇌 없이 망상만 휘갈기는 그런 소설에서나 나올 이름이요. 생각해보니 구리구리한 냄새는 거기서부터 나는 것 같네요. 텍스트로 현실을 구현하려면 현실보다 더욱 현실적이어야 하는데, 이런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소설을 가공의 이야기로 보이게 합니다.

  플롯도 별 내용 없습니다. 그냥 맘앓이만 하는 내용입니다. 내면의 여행이요? 그런 건 없습니다. 정확히 열흘 하고도 50일동안은 그냥 그 아이를 꿈에서 보다가, 친구와 놀다가, 그 아이가 언제 오는지 손꼽아 기다리기만 합니다. 사실 영화 '패터슨' 역시 이런 패턴입니다. 계속 반복되는 일상. 그 사이 조금씩의 변주. 그게 끝입니다. 지루하고, 특색이 없죠. 물론 '소년아, 나를 꺼내 줘'가 지루했다는 건 아닙니다. 작가도 이런 플롯 구조의 단점을 알고 있는지, 문장의 호흡이 굉장히 짧아요. 하지만 특색이 없다는 단점은 잡지 못했습니다.

  이 소설에는 특색이 없습니다. 문체와 스토리에서는 어떠한 향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저 멍하니 시간만 갈 뿐이죠. 다른 소설을 보세요. 많은 소설은 자기만의 특색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령 천명관의 『고래』는 구전문학을 그대로 책에 옮겨놓은 것 같은 문체와 서사 구조라는 특색을 가지고 있고,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은 플롯을 통해 '애착'이란 감정에 대해 다루면서 철학적 특색을 지니게 되었죠. 그런데 이 책에는 어떤 것도 없습니다. 문체는 고2병 여고생 감성이 들어간 것 말곤 아무런 특색도 없습니다. 플롯이요? 아무런 내용도 없는데 여기서 어떻게 특색을 찾습니까. 이 소설에는 매력이 없습니다. 잘 읽힌다는 것 외엔 어떠한 매력도 없어요. 차라리 조남주 작가의『82년생 김지영』이나 공지영의 『도가니』처럼 내용이 시의성을 띄기라도 했으면 몰라요. 그것도 아닙니다. 여기서는 어떠한 매력도 느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어요. 스토리도 평이해, 특색도 없어, 심지어 문체에서도 어떠한 힌트를 안 줍니다. 내면의 성찰도 크게 눈에 안 띄어요. 기껏해야 중간에 나온 '내가 얼을 왜 좋아할까?' 이 질문 하나. 이게 끝이죠.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죠? '내가 이렇게 짝사랑을 했다'? 아니면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는 사랑'? 짝사랑에 슬퍼서 엉엉 울고, 마음 졸이고, 연락을 기다리는 사춘기 소녀에게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요? 차라리 이게 상업 소설이었으면 그 소녀의 등이라도 토닥여줄 수 있었을텐데. 그런데 이건 문학소설이잖아요. 이 소녀를 통해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그게 뭔데요? 작가님? 

   여기저기 배치된 맥거핀도 주제를 더욱 헷갈리게 합니다. 카벙클, 점집 할머니, 얼을 만난지 열흘 하고도 50일자에 나온 석양. 이 장면들은 무슨 이유에서 배치한 거죠? 그냥 최저 글자수 맞추려고? 결국 이 이야기들은 메인 플룻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아무런 힌트도 없는 상태에서 이런 장치들을 설치하니 더 헷갈려요. 차라리 이런 것들은 잘라버렸으면 좋겠어요.

  전 이런 소설을 제일 싫어합니다. 하고 싶은 말도 없고, 그렇다고 완성도가 높은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도 아무런 특색이 없는 소설이 제일 싫어요. 시간 낭비한 기분이 들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기만적입니다. '사계절문학상 대상'이라는 것도 기만적이고, 소설의 스토리도 기만적이고, 작중에 나온 여러 맥거핀은 그 정점이에요. 심지어 오그라들기까지 합니다. 이런건 문학소설이 아닙니다. 그냥 저기 쓰레기통에 처박혀있는 콘티죠. 이런 거에 대상을 준 출판사 사계절은 반성해야 합니다. 하여간, 앞으로 이런 걸 쓴 김진나 작가의 소설이건, 이런 게 당당히 대상으로 올라와있는 사계절문학상이건 일단 거르고 봐야겠네요. 정말 실망했습니다.

평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