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물을 마셔도 춥지 않은 계절입니다. 어느새 거리에는 벚꽃이 함박지게 피었고, 바깥은 꽃놀이를 즐기는 사람으로 가득합니다. 사실 이 블로그도 이맘때쯤, 그러니깐 길가에는 개나리와 민들레가 피고, 잔디 사이에선 파릇파릇 들꽃이 자라고, 울긋불긋 진달래가 산 속에서 고개를 내밀 때쯤 만들어졌습니다. 물론 그 때 제 마음은 봄이 아니었지만요. 사실 이 블로그를 만들게 된 것도 글을 쓰면서 실연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만든 것이었습니다. 이 블로그의 세번째 글이 인어공주 평론인 것도 그 이유에서입니다.

  그렇기에 실연의 상처가 아물자, 이 블로그는 자연스레 버려지게 되었습니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 집중하게 된 까닭도 있겠지만, 그것보단 그냥 미친듯이 놀기만 했던 것도 그 이유중 하나일 것입니다. 그동안 저는 이 블로그의 존재조차 잊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 취미도 글에서 음악으로 자연스레 옮겨갔습니다. 하긴, 제가 생각해도 글쓰기는 쓸모없는 취미이긴 합니다. 과연 누가 사진도 없는 긴 글을 읽으려 하겠습니까? 시간은 많은데, 데이터는 부족한 사람이나 글을 읽으려 하겠지요.

  읽는데에 3분도 안 걸리는 글을 놔두고 유투브를 보는 사람이 부지기수입니다. 스스로 책을 읽는 사람도 없습니다. 대신 책을 대신 읽어주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더이상 시를 읽지 않습니다. 대신 거기에 가락을 붙인 음악을 듣습니다. 시인이 음악가로 전향하고, 문학성을 띈 노래가 멜론 차트 역주행을 하는 지금 시대에 문학은, 아니 정확히 글은 시대에 뒤쳐진 매체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글을 다시 쓰려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저만치 뒤에 있었다면 좋겠다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저는 조바심을 내면 낼수록 저 뒤에 있는 사람들은 점점 더 가까워집니다. 아니, 이미 저 앞에 있을지도 모르죠. 그러면 그럴수록 조바심은 점점 더 커집니다. 그렇게 저는 점점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제가 이렇게 격차를 내고 싶었던 이유는 단지 여유를 부리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른 사람 위에 있으면서 여유를 부리는 삶.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꿈이었습니다. 누군가의 위에 선다는 것은 끊임없이 달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던 것입니다.

  친구에게 이 문제를 가지고 얘기했을 때, 그 친구는 나의 생각이 오만하다고 했습니다. 하긴, 저는 쉼없이 뛸 자세도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정말 쉼없이 뛸 자세가 되어있었다면 남들이 어디에 있건 제 최고 기록을 깨는 것을 목표로 했겠지요.

  그래서 저는 조바심을 내지도 않고, 남들과 비교하지도 않으려 합니다. 대신, 저는 제 목표까지 걸으려고 합니다. 그 친구가 말했듯이 지금은 살살 걷기 좋은 계절이니 말입니다. 힘들면 꽃그늘 아래서 쉬다 가는 거지. 저는 글을 쓰며 천천히 걸으려 합니다. 길가에 핀 개나리가 얼마나 노란지, 잔디 사이로 자라는 들꽃들은 얼마나 파릇파릇한지, 진달래는 얼마나 울긋불긋한지 천천히 걸으며 글로 남기려 합니다.

  오랜만에 긴 글을 적어 두서가 없습니다. 그래도 쉬엄쉬엄 펜대를 놀리다보면 어느새 예전처럼 깔끔하게 글을 쓸 수 있겠지요. 어쨌건, 저는 다시 글을 쓸 것입니다. 언젠가 다시 뛰는 날이 오겠지만, 그 때까진 느긋하게 걸어다녀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