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읽기 전에 먼저 읽어보세요: 『귀 없는 호이치(원제: 耳なし芳一)』(전래동화) - 일본


도깨비게
- 시모노세키에서만 난다는 도깨비게는 특유의 등껍질 모양으로 유명하다. 이 게는 등껍질의 모양이 일본의 도깨비 모양의 등껍질을 가졌다고 해서 도깨비게라고 불린다. 일본에서는 이 게를 헤이케가니(平家蟹)라고 부르는데, 헤이시(平) 가문의 게라는 뜻이다. 이 게가 이런 이름을 가지게 된 데에는 슬픈 사연이 있다. 

  헤이안 시대 말기에 덴노를 모시는 헤이시 가문과 이와 대립하던 겐지 가문의 전쟁이 있었다. 이 전쟁이 끝나갈 즈음 궁지에 몰린 헤이시 가문은 8살 난 덴노를 모시고 히코시마(지금의 시모노세키)로 후퇴해 그 곳에서 거점을 잡았다. 그러나 요시쓰네에 의해 헤이시 가문은 고립된다. 헤이시 가문은 단노우라 해역에서 요시쓰네에 맞서 분전하지만, 끝내 패배하여 안토쿠 덴노를 비롯한 헤이시 가문 전원이 해역에 몸을 던졌다. 이 때 해역에 몸을 던진 헤이시 가문의 원혼들이 게가 되었고, 이때문에 게의 등껍질 모양이 도깨비 모양이라는 것이다. 

헤이케모노가타리
  큰 전쟁이 일어난 까닭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지역에는 다른 기묘한 이야기가 많다. 아일랜드에서 일본으로 귀화한 라프카디오 헌(Lafcadio Hearn)의 저서 『괴담(Kwaidan)』(1904)에 정리된 내용에 따르자면 깊은 밤, 수천이 넘는 도깨비불이 파도 위를 떠다니고 바람이 불면 전장소리와도 같은 떠들썩한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사실 예전에는 이보다 더 심했다고 하는데, 밤마다 인근에 있는 배를 가라앉히려고 하거나 헤엄치는 사람을 물 속으로 끌고가려 했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헤이케 가문을 위한 절(아미다지)을 세우고 희생자들을 위한 무덤까지 만든 것을 보면 헤이시 가문의 원혼들이 어지간히도 무서웠던 모양이다.

  어쨌던, 8살 난 덴노가 권력다툼에 희생되어 차가운 바다에 몸을 던졌다는 이야기는 어지간히도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했던 모양이다. 몇 세기가 지난 후 단노우라 전투를 배경으로 한 예술 작품이 쏟아져나왔기 때문이다. 개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바로 작자 미상의 군담소설인 『헤이케 이야기(平家物語)』이다. 헤이케 이야기는 무사 출신으로선 최초로 권력을 장악한 헤이시 가문의 대두와 번영, 그리고 몰락을 그린 작품으로 인생의 무상함을 묘사하고 있다. 

  이 소설의 기원에 대해서는 설이 갈리는데, 하나는 유키나가라는 인물이 헤이케 이야기의 작자이며 쇼부쓰란 맹인에게 헤이케 이야기를 가르쳐 읊게 했다고 하는 설이다. 요시다 겐코가 『쓰레즈레구사(徒然草)』에서 제시한 설인데, 무사나 전투 이야기는 쇼부쓰로 하여금 무사에게 물어 기록했다는 내용이 전해진다. 나머지 하나는 사이부쓰라는 승려를 헤이케 이야기의 저자로 보는 설이다. 이외에도 유키나가와 사이부쓰를 동일인물로 보는 설도 있으나 이는 전승일 뿐이고 실제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는 없다.

『平家物語絵巻』巻十一、屋島の戦い「扇の的」- Wikipedia Commons

헤이쿄쿠(平曲)
  이 소설은 헤이쿄쿠(平曲) 형식으로 널리 퍼졌다. 헤이쿄쿠란 헤이케 이야기를 비파 반주에 맞춰 가락을 붙여서 이야기하는 것을 말한다. 헤이쿄쿠는 총 200장구로 구성되어있는데, 한 구당 몇 개의 단락으로 이루어져있다. 헤이쿄쿠와 같은 군기모노가타리는 비파법사에 의해 널리 퍼졌다. 비파법사는 헤이안 시대부터 생겨난 직업으로 원래 비파를 퉁기며 경문이나 불교에 관련된 이야기를 읊었지만 시대가 지나며 점차 종교적 색채가 옅어지면서 모노가타리류도 읊게 된다. 비파법사는 안마사, 침구술사등과 더불어 맹인들의 직업이었다.

  『귀 없는 호이치』전설의 주인공인 호이치 역시 맹인 비파법사인데, 뛰어난 비파 실력을 가지고 있다. 이 사람은 특히 겐지이야기와 헤이교쿠를 잘 탔는데, 헤이쿄구에서 단노우라 전투(壇ノ浦の戦い) 대목을 부를 때는 귀신이라고 할 지라도 눈물을 흘린다고 할 정도였다. 원래 그는 매우 가난했으나 그가 비파를 타는 모습에 감명받은 주지에게 별다른 일이 없는 한 저녁마다 비파를 타는 댓가로 절의 방 한 칸을 얻게 된다.

그는 스님과 동자승이 절을 비운 사이, 그는 한 사무라이의 부름으로 높은 사람의 앞에서 헤이케 이야기를 부른다. 이후 그는 시녀장에게 며칠 더 높은 사람 앞에서 헤이케 이야기를 불러줄 것을 요청받는다. 그러나 시녀장은 그가 매일 밤 높은 사람에게 헤이케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을 말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경고한다. 그는 주지스님의 물음에도 거짓말을 하면서 계속 그 사람 앞에서 노래를 부른다. 알고 보니 호이치를 부른 이들은 묘지의 혼령들이었다. 호이치의 목숨이 위태로운 것을 본 주지 스님은 그를 지키기 위해 그의 온 몸에 경전을 새겨놓는다. 하지만 호이의 귀에 경전을 새겨놓지 않은 동자승의 실수로 호이치는 귀를 잃고 만다. 

  다음날 주지스님은 귀에 경전을 써주지 못한 것을 사과하며 좋은 의원에게 호이치의 귀를 치료해줄 것을 부탁한다. 좋은 의원에게 부탁한 덕분인지 귀는 다행이 잘 아물었다. 호이치가 겪은 사건은 사람들의 입소문을 탔고, 호이치는 금새 유명해졌다. 이후 지체 높은 사람들이 호이치에게 연주를 부탁하면서 호이치는 부자가 된다. 그리하여 호이치는 사람들에게 "귀 없는 호이치"로 알려졌다는 것이다.

『平治物語絵巻』三条殿焼討 ボストン美術館所蔵 - Wikipedia Commons

라프카디오 헌
  『귀 없는 호이치』전설은 일본에 귀화한 아일랜드인인 라프카디오 헌(Lafcadio Hearn)의 저서 『괴담(Kwaidan)』(1904)에 수록된 것이다. 라프카디오 헌은 그리스의 한 섬에서 태어났다가 이후 미국을 거쳐 일본으로 오게 되는데, 시마네 현의 이즈모(出雲)라는 곳에서 교사 생활을 하면서 그 지방 사무라이의 딸 고이즈미 세쓰와 만나 결혼한다. 대표 저서로는『치타(Chita)』(1889),『동쪽의 나라에서(Out of East)』(1895),『마음(Kokoro)』(1896),그리고 앞서 말한『괴담(Kwaidan)』(1904)등이 있다.

  헌의 저서에서 나타나는 가장 큰 특징은 특유의 일본풍 정서가 진하게 녹아있다는 것이다. 그의 뿌리가 아일랜드인이었음을 감안하면 신기한 것이다. 이러한 특징이 가장 잘 나타나는 저서가 바로『괴담』(1904)이다. 그는 이 책을 집필하기 위해 사전 조사를 할 때 그 자신이 일본어를 읽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인에게 이야기를 듣고서 그 정서를 살려 글을 썼다. 게다가 여기에 작가의 상상력을 더했기 때문에 이 책에 적혀있는 전설은 실제 전해져오는것에 비해 각색이 많이 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책에는 『귀 없는 호이치』를 비롯한 수많은 전설이 수록되어있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설녀(雪女)』이다. 이 전설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두 사냥꾼이 겨울에 눈보라로 산에서 길을 잃어 산 속 오두막에 자는데, 설녀가 나타나 늙은 사냥꾼을 얼려 죽인다. 이를 젊은 사냥꾼이 보자 설녀는 그에게 아직 살 날이 많이 남았으니 죽이지 않는 대신 자신을 본 일을 남에게 말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사라진다.

  몇년 뒤 살아남은 사냥꾼은 피부가 희고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산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 그는 눈이 내리는 바깥을 보며 설녀를 만났던 일을 말한다. 그러자 아내는 정체를 드러낸다. 그녀가 바로 설녀였던 것이다. 설녀는 사냥꾼을 차마 죽이지 못하고 사라졌다. 이후 사냥꾼과 아이들은 다시는 설녀를 보지 못했다고 한다.


괴담과 비극

  『설녀(雪女)』와 『귀 없는 호이치(耳なし芳一)』의 뒤에는 가슴아픈 비극이 숨어있다. 『설녀(雪女)』에서 설녀는 입가벼운 남자때문에 졸지에 가정과 아이들을 잃게 되었고 『귀 없는 호이치(耳なし芳一)』는 정권을 얻기 위한 전쟁에서 패배해 아녀자를 포함한 가문 전원과 그들이 모시던 8살 덴노가 단노우라의 바다에 빠져야 했다는 비극적인 역사적 배경 하에서 시작된다.

  비단 전설들만 비극과 관련된 것은 아니다. 모든 괴담은 비극과 연관되어있다. 당장 유명한 빨간마스크 괴담은 의료사고로 수술 도중 입이 찢어져버린 여인이 빨간마스크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몇몇 괴담은 『귀 없는 호이치』처럼 역사와 관련되어있는데, 이미 네이버웹툰 『전설의 고향』에서 한번 소개된 경북 칠곡군의 9척귀신 괴담은 6.25 전쟁통에 억울하게 희생된 손각시에 얽힌 이야기이다.

  우리가 살면서 보고 듣는 괴담의 종류만 수백가지가 넘는다. 이 괴담들을 한여름밤을 나기 위한 이야기로만 소비하는 것도 좋지만 가끔 그 뒤에 있는 비극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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